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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꿈] '회원들 도움될 때 떠나 보라'

“시원섭섭하네요.” 남가주한인세탁협회(회장 최병집)의 스티브 한(70) 사무국장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협회를 떠난다. 세탁협회를 위해 일한지 14년만이다. 한 사무국장이 세탁협회와 인연이 닿은 것이 1994년. 당시 세탁협회의 회원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다. 당시만해도 협회장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팩스 머신을 놔두고 협회 업무를 보던 때. 하지만 양적으로 협회가 성장하며 회장 혼자서 협회 업무를 보기에는 업무량이 너무 커졌고, 제14대 고 안문수 회장이 협회 사무실을 얻고 업무를 담당할 사무국장을 뽑았다. 그는 "당시 아는 분의 소개로 협회와 인연이 닿았다"며 회상했다. 한 사무국장은 회원 관리 회비 접수 기록 재무 입금 문서작성 및 발송 협회 웹사이트 관리 등 일반 협회 업무부터 협회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나 세미나도 준비도 임원들과 함께 해왔다. 협회에서 환경교육을 하면 가주대기정화국(ARB)에 세미나 스케줄을 보고하고 인증서를 받는 업무도 한 사무국장의 업무 중 하나. 이외에도 회원사들의 문의 전화 등 협회 살림을 도맡아 해왔다. 14년간 정든 협회를 막상 떠난다니 만감이 교차한다는 한 사무국장. 협회 사무장을 맡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한인들의 미약한 정치력이다. 가주정부나 로컬 정부에서 환경 관련 법을 추진하면서 정작 관련된 세탁업주들의 목소리는 크게 반영되지 않아왔던 것이 현실이다. 항상 한인세탁업주들은 법안이 통과되고 정부기관에 억울함을 호소해왔지만 결국은 법안 통과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이제 한인들도 한인 비즈니스를 보호해줄 한인 정치인을 키울 때가 됐다. 그래야 한인 비즈니스들도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14년간 협회 임원들을 도와 회원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면서 큰 보람을 느껴왔다는 그다. "컴퓨터 교실 등 회원들이 가입비 100달러 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임원들과 회원들을 도왔죠. 그중에는 고마음을 표하는 분들도 있는데 참 감사하더라구요. 그리고 사무국장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움을 준 임원단들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성장해온 협회가 보다 더 약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 사무국장에게 은퇴는 끝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역 노인복지 센터 등 그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래도 건강할 때 협회를 떠나게 돼 다행이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유롭게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2008-12-04

[나의 일 나의 꿈] 조은관광 여성가이드 허 란 차장

또 투어 내내 긴장감을 유지해야 돼 체력도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가이드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조은관광의 허 차장이 눈에 띄는 이유다. 허 차장은 "한국에서 여행객을 인솔하는 TC(Tour Conductor)가 유망 직종이었던 적이 있었다"면서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언젠가는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가이드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02년 미국 서부대륙투어를 왔는데 여자 가이드가 나와 멋지게 관광객을 인솔하는 것을 보고 반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허 차장은 덧붙였다. 그러나 밖에서 보이는 화려한 가이드의 모습은 막상 현실에 부딪치니 고난의 연속이었다. 허 차장은 1년간 수습으로 선배 가이드를 따라 투어를 따라 다니며 관광객을 투어가 끝날때까지 안전하게 인솔하는 과정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다. 또한 투어 내내 버스를 타고 때로는 마이크를 들고 설명하면서 여행객들의 궁금한 질문 하나하나에 친절하게 답해 줘야 하고 관광객들의 사소한 서비스 요구에도 웃는 얼굴로 대답해주는 긴장감의 연속으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면 몸이 천근만근이 된다. 그러나 허 차장은 오히려 고객들에게 더 잘 해주려고 노력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다보니 투어가 끝날때는 '고맙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들을 정도로 베테랑이 되어갔다. "서울째즈아카데미에서 드럼을 전공해 음악적인 밑바탕도 있고 태권도 공인 4단으로 한국에서 사범으로 어린이들을 지도한 경험도 있어 여행객들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투어가 없는 날 가이드는 무엇을 할까. 허 차장은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일주일에 3일은 도장을 찾아 2시간씩 수련을 한다고 한다. 또한 밀린 공부를 위해 인터넷과 각종 여행서적 등을 뒤지며 관광지에 대해 공부하며 시간을 보낸다. 투어를 나가면 가이드의 설명을 유심히 들으며 틀린 곳을 꼬집는 관광객들도 있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기 위해 먼나라이웃나라 13권을 여러 번 완독하기도 했다. 이외 미국역사는 물론 한국역사도 연대별로 사건별로 기억해 관광지 설명에 곁들여 여행객들로부터 호평도 받고있다. "요세미티공원으로 투어를 나갔을 때 한 관광객이 차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해 혼이 난 적이 있다"는 허 차장은 "인터넷과 책을 뒤져 나무 이름을 죄다 외워 다음날 손님에게 설명을 해 줘 겨우 체면을 살릴 수 있었다고. 가이드 경력 5년. 허 차장은 가이드로서 최고의 위치에 서고자 한다. 관광객들이 선.후배 가이드들이 명실공히 인정해주는 자타공인의 여성가이드가 되는 게 목표. 꿈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서는 허 차장은 "꿈을 이룬 뒤에는 여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만의 여행을 하고 싶다"며 마무리했다. 백정환 기자

2008-10-30

[나의 일 나의 꿈] 유니온오토샵 크리스 윤 총매니저

90년대초 운전학원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도입되던 때 강사로 취직해 1년만에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강요에 떠밀려 애리조나에 어학연수 왔다. "3개월 정도 공부하다 자동차를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에 LA에 있는 공업대학 자동차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년반 동안 정비에 관한 이론기초부터 실기 현장실습까지 완벽하게 습득했습니다." 98년 학교를 졸업하고 온타리오의 한 카센터에서 매니저로 일하면서 도요타 혼다 BMW 벤츠 등 각종 차량을 정비하면서 전문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카센터 옆 공터를 바디샵으로 활용한 사장의 도움으로 자동차 바디도 직접 고쳐보며 정비부터 바디까지 토탈서비스를 할 수 있게됐다. 이후 인터넷에서 문제 있는 자동차를 직접 사 고친 다음 다시 파는 부업도 하게됐다. "문제차량을 구입해서 직접 고치니 부품값 밖에 들지 않아 부업으로도 괜찮았고 다양한 차를 손 볼 수 있는 매력은 물론 타보고 싶던 BMW 벤츠 등 대부분의 차를 소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002년 출퇴근 시간이 긴 온타리오 카센터를 떠나 현재 유니온오토 바디샵으로 옮기면서 윤 매니저는 경영수업을 시작하게 됐다. 윤 매니저는 "당시 15명 정도 라티노들이 별 기술도 없는 반장의 말만 들으며 샵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고 물건도 빼돌리고 있었는데 사장은 자동차에 대해 전혀 몰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면서 "6개월 정도 라티노들에게 정확한 기술을 알려주고 함께 일하면서부터 샵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또 부품장부를 정확하게 기록하면서 이익도 점차 늘자 사장도 전폭적인 신뢰를 주게 됐다. 이후 윤 매니저가 운영을 거의 맡게됐고 올 2월부터는 아예 총 매니저로 오토샵 운영의 전권을 부여받았다. 윤 매니저는 앞으로의 목표도 명확히 세우고 있다. 토탈정비서비스와 함께 합법적인 자동차 업그레이드 즉 튜닝으로 고객 개개인들만의 자동차를 만들어 주는 퍼포먼스 샵을 오픈하는 것이다. "소소한 정비부터 바디수리까지 소화할 수 있어 한곳에서 토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자동차 외관 디자인부터 엔진출력 조정까지 합법적인 선에서 고객 한명 한명의 고유한 자동차를 만드는 퍼포먼스 샵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의: (213)949-9299 백정환 기자

2008-10-23

[나의 일 나의 꿈] '미향식품' 으로 되돌아온 신순덕씨···'밑반찬 할머니 다시 왔소'

LA한인타운 역사와 함께 해온 상록수식품의 신순덕 할머니가 돌아왔다. 같은 주인, 같은 자리다. 헌데 상호명이 바뀌었다. 미향식품 케이터링. 신순덕 할머니의 나이는 올해로 여든. 노령이다. 하지만 마음은 36년전 상록수식품을 시작할 때와 같다. 대신 37년째 같이 해온 상록수를 털어버리고 미향식품과 새출발한다. 신순덕 할머니는 1972년 올림픽과 크렌셔 인근에 문을 열었다. 상록수는 한인 대형마켓이 없던 시절 각종 김치와 밑반찬 된장과 고추장 등을 선보이며 반찬가게 미니마켓으로 한인들의 식탁을 지켜왔다. 하지만 대형마켓들이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불경기까지 닥치면서 비즈니스가 더욱 어려워졌다. 여러 사정으로 결국 지난 7월 상록수식품을 닫았다. 미국에 오자마자 3개월만에 상록수를 오픈하고 일주일내내 새벽부터 김치를 담그고 장을 뜨고 반찬을 만드느라 고단한 몸을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쉬는게 쉬는게 아니었다. 괜히 마음이 초조해졌다. 집에 있는게 오히려 고욕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상록수가 자식이고 남편이었구나.' 신 할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상록수 의지할 데를 잃은 것이다. '안되겠다 다시 열자'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상록수 김치와 된장을 사기 위해 멀리서부터 찾아오고 할머니의 손맛에 믿음을 보내준 단골을 하루라도 빨리 다시 만나야겠다 싶었다. 다행히 건물주와도 이야기가 잘 돼 같은 자리에서 김치와 반찬을 만들고 손님을 맞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전으로 돌아갔다. 사실 자식들은 신 할머니를 말려왔었다. 집에서 편히 쉬시라고. 여행 다니시며 여생을 즐기시라고. 이번에 다시 오픈하니 자식들은 걱정이 크다. 딸은 속상해 어머니와 말도 안할 정도. 그래도 신순덕 할머니의 얼굴엔 생기가 돈다. 하던 일을 놓으면 뭐하나 싶다. 신순덕 할머니는 정신대 소집을 피해 16살에 결혼한 후 44세에 미국땅을 밟기 전까지 한국에서 포목상을 했다. 가정에서 해먹었지 직접 담근 김치와 장을 판 적은 없었다. 딸네 집에 왔다가 타운에 반찬가게가 없는 것을 알고 덜컥 상록수를 냈던 것이다. 그동안 몰려드는 손님으로 밥도 못먹고 화장실도 못가는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오래된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뇌출혈로 대수술을 받았을 때 아수라장이 된 타운에서 혼자 문을 열고 한인들에게 당장 필요한 음식이며 물을 팔던 4.29폭동 등 수많은 고비를 넘겼다. 요즘도 힘들다.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순덕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5시30분부터 10여명의 종업원들과 김치와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형편이 어려운 손님들에게는 김치 한통 반찬 한팩을 집어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잊지 않는다. 돈이 모자란 손님에게는 '됐다'하고 보내는 할머니의 풍성한 마음도 그대로다. 신 할머니가 어쩌다 안보이면 걱정하고 미향식품으로 다시 문을 연 후에는 "김치 반찬 다시 먹게 해줘서 고맙다"며 자기 일처럼 반가워하는 가족같고 친구같은 고객 신 할머니 손맛 하나 보고 리버사이드며 팜스프링에서 타운까지 찾아와 10병씩 사가는 고객이 있는 한 신순덕 할머니는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들 것이다. "내 분수를 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 행복을 포기할 수 없어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할 겁니다." ▷문의: (323)939-1955 이재희 기자 jhlee@koreadaily.com

2008-10-16

[나의 일 나의 꿈] 문신아티스트 필립 스피어맨 씨

“문신으로 한국 문화를 알릴겁니다.” 한국계 문신아티스트 필립 스피어맨(32)이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다. 그는 2002년 아테시아에 문신샵 ‘잉크워크(Ink Work)’를 오픈, 운영해오고 있다. 1500스퀘어피트 규모의 샵에는 그를 포함 5명의 문신아티스트들이 일하고 있다. 그의 솜씨는 문신 애호가들에게도 소문이 나있다. 필립씨가 작업하는 손님 숫자는 하루 평균 2명. 어깨나 등 등 사이즈가 큰 문신을 주로 하기 때문에 한번 작업에 3~5시간은 기본이다. 시간당 200달러를 받지만 이미 2년후까지 예약이 다 차있을 정도다. 그가 처음 문신업계에 뛰어든지도 11년이 지났다. "처음에 친구가 그림을 들고 와서 새겨달라 하더라구요. 한번 해보니까 재미가 있었어요." 문신업계 입문이 쉽지만은 않았다. 문신아티스트의 90%가 백인들이다. 유색인종인 그가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혼자서 문신 기술을 공부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나중에 더 멋있게 해주겠다 약속을 하고 친구들과 문신을 연습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문신관련 컨벤션에 나가서 어깨너머로 문신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문신업계에서 네트워크와 기술을 쌓았다. 어느덧 컨벤션에 나가면 그에게 기술을 배우는 사람들도 제법된다. 각종 컨벤션에서 받은 '최고 문신상'만해도 100여개에 이른다. 이제는 유명 문신 아티스트들도 그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들어 11년간 간직해왔던 꿈을 향한 발걸음을 내딪었다. 바로 한국적인 문신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한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어도 막힘없이 구사하는 그다. 필립씨는 "문신 그래픽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 분위기의 그래픽은 많은데 한국적인 그래픽은 없다"며 "한국적인 그래픽을 문신 그래픽으로 도입하고 싶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신 기술에 자신이 생길때까지 한국 문신 그림을 시도하지 않았었다는 그다. 어설픈 실력으로 한국 문신 그림을 했다가 오히려 한국에 대한 이미지만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한국적인 문신 그래픽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3개월에 한번꼴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려 하루종일 한국 민화를 보고 사진을 찍으며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작업하는 문신 그래픽 스케치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십이지신 탈 용 기생 등 한국적인 그림들이다. 필립씨는 "단순히 그림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도 함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손님들에게 그림의 의미와 배경을 함께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며 "요즘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아 1분 1초가 모자를 지경"이라며 웃었다. 그의 디자인북은 내년초 출간될 예정이다. 실제로 손님들과 대화를 하며 손님들에게 이순신 동상 한국인 등 한국적인 문신을 권유하고 있다. 물론 반응도 좋다. "제게 있어서 문신은 일이라기 보다는 취미죠. 이제 11년간 참아왔던 한국적인 문신 그래픽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다는 목표로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즐거움이 늘었습니다." ▷문의:(562)468-4615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2008-10-09

[나의 일 나의 꿈] '노인 외로움 함께 풀어야죠'

“말동무 해 드리는 게 최고로 노인 어른을 공경하는 것 같아요” 웨스턴 양로보건센터(ADHC)의 진 김 디렉터가 전하는 노인을 공경하는 가장 쉽지만 실천하기 쉽지않은 방법이다. 진 김 디렉터는 “부모를 노인 아파트에 모셔다 놓고 얼굴 내밀지 않는 자식들이 꽤 된다”면서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은 극심한 외로움으로 인해 말벗만 해 드려도 얼굴에 생기가 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민생활 바쁘고 힘든 것은 이해하지만 자신을 낳아 키워 준 부모를 위해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부모를 자주 찾아가 뵙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강조했다. 그가 운영하는 웨스턴 ADHC에는 180여명의 노인이 매일 하루 4시간씩 노래방 빙고게임 라인댄스 체조 등의 여흥을 비롯해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지압 마사지 건강검진 등의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또 소셜 월페어 영문편지를 번역 및 해설해 주는 등의 사회복지 서비스와 아침과 점심 등의 식사도 제공하고 있다. 노인은 외부 사회와 단절 외로움 몸과 마음의 쇠약함에 따라 쉽게 우울증에 걸릴 수 있어 집에 혼자만 있으면 건강이 쇠퇴하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같은 외로움과 사회와의 단절을 해소할 수 있도록 가족이나 친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김 디렉터의 설명. "사실 저희가 귀중한 생명을 구한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센터에 나오던 할머니 한분이 아무 연락없이 보이지 않자 센터측이 아파트 매니저와 자식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불안한 감을 느낀 김 데렉터는 할머니 댁으로 직접 찾아갔다. 매니저와 경찰을 불러 문을 연 순간 마루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신속하게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된 할머니는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김 디렉터는 "사실 저와 저희 직원들이 센터에 나오시는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가족보다 더 자주보게 돼 더 가깝다"며 "그래서 우리가 가장 빨리 그분들의 건강상태와 기분을 알 수 있고 가장 필요한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케어 실무에서 체득한 15년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김 디렉터는 노인의 정신적 신체적 심리적 상태에 관한 전문지식을 체험으로 갖출 수 있었다. 1994년 커뮤니티 보건소에서 취직해 아시안계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노인케어 일을 접하게 된 김 디렉터. 일하면서 각종 트레이닝을 받고 ADHC를 운영하고 싶은 마음에 액티비티 코디네이터 자격증도 취득해 실제로 3개월간 다른 ADHC에서 일하기도 했다. 김 디렉터는 "한인직원이 한식과 다양한 액티비티와 사회복지 서비스를 도와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ADHC를 열게 됐다"면서 "어머니들 아버지들이 센터에 나와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보람을 얻는다"고 말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공동체 개념의 소규모 커뮤니티로 노인과 자녀를 포함해 손주까지도 아울러 도란도란 화목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게 김 디렉터의 포부다. 진성철 기자 sjin@koreadaily.com

2008-10-02

[나의 일 나의 꿈] '기초부터 실무 배워 한인사회 도와야죠'

“한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보람이 있습니다.” 가주 조세형평국(BOE) 제3지구 미셸 스틸 박 위원 사무실의 피터 김(24) 보좌관은 박 위원을 대신해 한인 커뮤니티와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보좌관의 역할은 쉽게 말해 박 위원의 손과 발이 되는 것입니다. 위원을 대신에 여러가지 실무를 처리하는 것이 바로 저의 일입니다.” 박 위원 사무실에는 그를 비롯한 8명의 보좌관이 박 위원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 보좌관의 주요 업무는 박 위원 스케줄 관리, 박 위원과 함께 한인사회 관련 세미나 등 행사 참가, 한인 납세자들을 위한 상담 및 세금 관련 정보 제공 등이다. 최근에는 판매세와 관련 한인세탁업계 담배 라이선스 및 CRV 관련 한인리커스토어 업계와의 연락을 맡고 있다. 김 보좌관은 "박 위원의 지시를 받아 한인 경제단체나 한인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주된 업무"라며 "또한 세금에 대한 한인들의 문의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이 한인사회에 큰 관심을 쏟는 만큼 김 보좌관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는 "가주에서 스몰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한인들이 법에 대해 잘 모르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며 "박 위원을 도와 한인들에게 세미나나 상담을 통해 BOE의 정책이나 세법에 대해 알려주고 법을 지킬 수 있게 돕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강조했다. UC 어바인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2006년 졸업한 뒤 박 의원 보좌관으로 활동을 시작 이제 2년차가 되고 있다. "어려서부터 정치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었죠. 그러면서 정치인 사무실에서 인턴을 했었구요." 고등학교때는 하원의원 사무실 인턴 대학교때는 워싱턴에서 일레인 첸 노동부 장관 사무실에서 인턴을 했었다. 그는 "2002년 주지사 선거 캠페인때 자원봉사 스태프로 일하며 박 위원을 처음 알게됐다"며 "그 후 꾸준히 연락을 하다가 박 위원이 당선되며 2007년부터 보좌관으로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김 보좌관. 그에겐 꿈이 있다. 훗날 박 위원같이 한인들을 대표하고 위하는 정치인이 되는 것. 연방정부보다는 주정부나 로컬정부에서 일하면서 한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이 그의 꿈이자 목표다. 김 보좌관은 "하지만 지금은 여러가지 배우는 단계입니다. 막상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보니 부족한 점이 많다"라며 "그래도 하나 하나 배우면서 꿈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문의:(310)377-8016 peter.kim@boe.ca.gov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2008-09-25

[나의 일 나의 꿈] '정확한 진단·맞춤 치료, UCLA 선·후배 뭉쳤죠'

“정확한 진단과 맞춤치료라는 기본을 지키는 진료를 하고 싶어 UCLA 선ㆍ후배가 모였습니다” LA한인타운 올림픽길, 옥스포드와 세라노 사이에 위치한 옥스포드 치과 그룹의 이진호, 박지호, 브라이언 정 공동원장이 전하는 치과병원을 설립하게 된 동기다. 정 원장은 “LA한인타운에 많은 치과들이 개업하면서 무한경쟁으로 하루에 수십명의 환자를 진찰하는 치과도 있다”며 “그 때문에 질환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보다 증상완화에 맞춘 잘못된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환자들이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병폐를 막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질병원인을 이중, 삼중으로 철저하게 진단ㆍ분석한 후 환자 개개인에 맞는 치료를 성심성의껏 하기 위해 모였다고 정 원장은 강조했다. 이 원장 역시 "정확한 진단과 맞춤치료를 위해 환자들과 1대1 상담을 통해 질병치료 과정을 상세히 알려 주고 질병 예방법과 치아관리 등의 교육도 병행했더니 환자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옥스포드 치과 그룹이 지향하는 것은 정확한 진단과 맞춤치료 외에도 한발 앞선 서비스와 환자중심의 치료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첨단 디지털 의료장비와 치료도구 심지어 거울과 컵 등 세심한 부분까지 환자들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3명의 의사가 정성껏 준비했다. 특히 최첨단 3D-X레이와 360도 촬영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 환자의 치아상태 뿐만 아니라 잇몸 뼈의 상태까지 정밀하게 측정해 치료 시에 한점의 오차도 없애려 총력을 다하고 있다. 박 원장은 "모두 UCLA 학부를 같이 다녀 서로 잘 알고 친하다"면서 "환자상태에 대해 서로 의견교환과 자문을 통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더욱더 전문적이고 진보된 의료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하는 점이 셋이 모여 치과를 하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모두 UCLA학부를 졸업했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학교는 전부 다른 것도 상호보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보스턴 소재의 터프츠 치과대학에서 박 원장은 콜럼비아 치과대학에서 정 원장은 보스턴 치과대학에서 치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이 원장과 정 원장은 각각 베스필 치과와 보스턴 치과그룹에서 수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어 한인타운에서는 꽤 알려져 있는 편이다. 또한 박 원장은 옥사나드에서 타인종 대상으로 치과를 4년동안 경영하고 있는 등 이들 3명 모두 전문지식과 실력을 겸비했다. 옥스포드 치과그룹은 임플란트 미용치과 치아교정 소아치과 틀니를 포함한 노인치과 신경치료를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와 비보험 환자를 위한 특별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문의: (323)737-1001 진성철 기자

2008-09-18

[나의 일 나의 꿈] '방송인 제롬은 잊어주세요'

“오히려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두근 두근 합니다.” LA한인타운 윌셔와 샌앤드류스 미스터피자에 지난 8일 첫 출근한 제롬 도 매니저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방송인 ‘제롬(Jerome)’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7월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미스터피자 LA한인타운 매장의 매니저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제롬 매니저는 "평소 식당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한 기회로 미스터피자에 몸을 담게 됐다"며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위해 노력했고 이제는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과 좋은 서비스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 차례라는 것이다. 그는 LA한인타운 매장에서 헤드 매니저를 도와 매장 관리를 비롯 서빙 오더 등을 업무를 보게된다. 1997년 방송에 데뷔 VJ MC로 활약하며 드라마 '변호사들' '잘난걸 어떡해' '동거동락' '생방송 TV 연예' 등 TV프로그램에 출연했었다. 또한 2003년부터 1년여 기간동안 강남 논현동에서 바를 운영했었고 2006년부터는 인터넷 샤핑몰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방송 경력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한국에서 최근에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아무래도 한국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점에 결국 한계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마음으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에 오게됐다"고 덧붙였다. 미스터피자의 매니저로 일을 시작한 그의 표정에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이 엿보였다. 이제 미스터피자의 매니저로서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미스터피자를 주류 사회에 알리고 더욱 확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제롬 매니저는 "한국에서 바와 인터넷 샤핑몰을 하면서 배웠던 마케팅 노하우를 기회가 되면 적용해보고 싶다"며 "주류시장에 미스터피자를 더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미스터 피자에서 일하기 전부터 미스터피자를 즐겨찾았다는 그다. 한국 레스토랑이지만 특유의 맛과 분위기로 타인종 시장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제롬 매니저의 생각이다. 그리고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를 더욱 신경쓰겠다는 계획이다. 아무리 판매하는 제품이 좋아도 손님 서비스가 안 좋으면 결국 손님들에게 외면당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단은 열심히 배우고 일을 해야겠죠. 성실하게 일해서 인정을 받게되면 훗날 미스터피자의 한 지점을 맡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2008-09-11

[나의 일 나의 꿈] '치아 컴플렉스 싹 날려드려요'

"치아 사이가 벌어져 입벌려 크게 웃지 못하는 분 누런 치아 때문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하는 분 환자들이 치아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WCI치과'의 이윤석 치과의사. 그가 치과의사를 하면서 가진 꿈이자 목표다. 처음부터 치아 컴플렉스 해결사(?)를 자처했던 것은 아니다. 치대에 진학한 형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콜롬비아 치대에 진학했고 시더스 사이나이에서 레지던트를 거친 후 지난해 1월 LA한인타운에 나왔다. 30년 경력의 임진환 치과의사와 함께 파트너로 WCI치과에서 환자를 맞으며 의외로 치아 컴플렉스로 고민하는 환자들이 많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가는 데다가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해 성향과도 딱 들어맞았다. 컴퓨터에 가득 저장된 치아 사이가 휑하진 벌어지거나 삐뚤삐뚤한 비포(before) 사진과 치료 후 가지런해지고 깨끗해진 치아가 담긴 애프터(after) 사진들을 보면 뿌듯해진다. 치료를 위해 떠놓은 치아 석고 모형을 만지고 있으면 힘이 난다. 조금만 치료해도 쉽게 예뻐질 수 있는데 컴플렉스만 키우는 경우는 안타까웠다. 특히 40~50대 중년 남성 가운데 치아 미용이나 성형이 필요하거나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흔히 치아 미백이나 교정을 생각하는데 가짜 손톱을 붙이듯 자신의 치아에 맞게 앏게 제작한 사기로 만든 비니어를 붙여 변색된 치아나 벌어진 치아를 메꾸거나 치아 형태를 개선하는 등의 치료하는 방법도 있다. 이같은 진료를 통해 인상을 좋게 해주고 자신감을 찾아주는 과정을 함께 하며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한다. 미적인 개선 또는 향상으로 정신적인 컴플렉스와 스트레스를 풀어줘 환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게 보람된다. 이제 중독이 됐다. 사람을 만나도 치아만 보게된다. 길가다가도 조금만 치료하면 더욱 이뻐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그냥 지나쳐야할 때면 아쉽다. 그래도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환자에게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환자와 함께 좋은 결과를 만들고자 한다. ▷문의: (213)251-0066 이재희 기자 jhlee@koreadaily.com

2008-08-28

[나의 일 나의 꿈] '아파트 건물주 고민 다 해결해 드려야죠'

“한인 아파트 건물주들, 문제가 생겨도 고민하지 마세요. 정성껏 도와드리겠습니다.” 백인들이 주축이 돼 있는 아파트 건물주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비영리재단에서 한인으로는 유일하게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새무얼 이(26·사진)씨. 이 코디네이터는 LA카운티 및 벤투라 카운티 아파트 건물주들을 위한 비영리재단 AAGLA(The Apartment Association Greater Los Angeles)에서 유일한 한인 직원으로 한인 건물주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AAGLA는 지난 1917년에 만들어진 전통깊은 비영리재단으로 주로 소규모 아파트 건물주들에게 법률 카운슬링 및 각종 업무를 도와주고 있다. 현재 회원으로 가입한 아파트 건물주만 3만여명에 이르며 한인 건물주도 400여명이 가입돼 있을 정도로 LA일대에서는 강력한 비영리재단이다. 오렌지카운티 소재 부동산회사에서 2년간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지난 봄 부터 AAGLA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한인 아파트 건물주들이 건물 관련 규정을 잘 몰라 피해를 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이들을 교육시키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0유닛 이상의 대규모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들은 재정적으로 튼튼해 전문 변화사의 도움을 받거나 전문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운영하고 있어 덜하지만 소규모 아파트 소유주들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문제가 생겨도 도움을 받지 못해 피해 규모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위한 법률적 행정적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AAGLA의 주된 임무라는 게 이 코디네이터의 설명이다. 그는 "한인 건물주들은 이를테면 세입자를 받으면서 크레딧 체크를 안해 낭패를 보거나 건물 관리 규정을 잘 몰라 인스펙션에서 적발돼 벌금으로 수만달러까지 내기도 한다"며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건물주들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교육도 실시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인 건물주들만을 위한 한국어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코디네이터는 "AAGLA에는 뛰어난 변호사들도 여러명 있을 뿐 아니라 강력한 로비스트도 있어 건물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법률이 개정되도록 노력도 하고 있다"며 "한인 건물주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고 싶다"고 전했다. ▷문의: (213)384-4131(ext. 340) 김현우 기자 khwo@koreadaily.com

2008-08-21

[나의 일 나의 꿈] '찻집같은 분위기로 심신치료'

중앙일보가 발행한 한인업소록 리스팅을 살펴보면 OC 일원에서 개업중인 한의원이 120개쯤 된다. 이들 한의원 대부분이 한인들을 대상으로 진료한다. 게다가 하얀 가운을 입은 근엄한 표정의 한의사, 진동하는 한약 냄새는 타인종 환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비치길 오렌지와 링컨 사이 메디컬 콘도에 위치한 ‘피부로 한방병원’은 앞에서 언급한 한의원의 고정관념을 깨는 아주 특별한 한의원이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마치 한국의 전통찻집을 연상케하는 깔끔하고 고급스런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치료실 두 곳은 아예 황토방으로 꾸몄다.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는 명상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은은한 초향기가 코끝을 감미롭게 자극한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마치 한국의 전통찻집을 연상케하는 깔끔하고 고급스런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치료실 두 곳은 아예 황토방으로 꾸몄다.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는 명상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은은한 초향기가 코끝을 감미롭게 자극한다. 레베카 송 원장는 '피부로'라는 상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한방 분야 중에서도 여드름 등 피부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한의사다. "젊었을 때는 피부가 곱다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출산을 전후해서 얼굴에 하얀 반점과 함께 여드름이 심하게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베벌리힐스 등지의 유명하다는 피부과를 찾아 다녔지만 아무런 치료효과를 볼 수 없었다. 한 때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우연히 한 한의원에서 침과 한약으로 치료를 받았고 거짓말 같이 피부 트러블이 사라졌다. 한방요법을 활용한 피부병 치료에 큰 관심을 갖게된 그는 한의대에 진학해 늦깍이 한의사가 됐다. "양방이 증상치료에 중점을 둔다면 한방치료는 체질개선을 통해 면역력을 강화시킨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여드름 등으로 고생하는 타인종 여성과 영어권 한인 2세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한방 치료에 대한 거부반응이 심한 이들 환자들은 산뜻한 병원 인테리어에 마음을 풀고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근원치료'가 가능하다는 송 원장의 설명에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송 원장은 개인 피부와 체질에 맞게 항균.해독 효과가 높은 한약과 약초를 침과 함께 절적하게 사용한다. 1주일에 한번 30분~1시간 정도 치료를 받을 경우 3개월쯤 지나면 건강한 피부를 되찾게 된다고 한다. "때가 되면 여드름이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대로 놓아두면 외모에 민감한 청소년기에 불안한 성격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성격이 예민한 자녀일수록 부모들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죠." 한방으로 여드름을 치료한 많은 환자들이 감사편지를 병원에 보내 온다. 송 원장은 "나 역시 한방치료로 피부병은 물론 마음의 병까지 고쳤듯이 환자들이 만족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소: 408 S.Beach Blvd. #108 Anaheim ▷문의: (714) 821-7900 (310) 350-9888 글.사진=노세희 기자 rshe@koreadaily.com

2008-08-14

[나의 일 나의 꿈] 3대째 이어온 한의학, 타인종에도 침술 봉사

“할리우드 보건소에서 타인종 대상으로 무료 진료 합니다” 남가주 한의과대학 학장이자 부속 한의원의 원장인 조현숙 학장은 매주 목요일마다 할리우드 선셋 프리 클리닉(Hollywood Sunset Free Clinic)에서 매주 3명의 인턴 학생들과 타인종 고객에게 침술 무료 진료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할리우드 보건소에서는 하루평균 10명의 타인종 환자가 마약, 금연, 목,허리, 등, 손목 등의 통증 치료를 받고 있다. 마약과 금연의 경우 금단현상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조 학장은 "타인종이 이미 침술의 효능을 알고 있어 침술을 거부하는 환자는 생각보다 드물다"며 "하지만 바늘에 대한 공포가 있는 환자는 가끔 있다"고 전했다. 이에 그는 밴디지에 미세한 바늘을 붙인 침이나 씨앗을 이용해 침술을 대신한다고 설명했다. "침을 맞은 타인종이 금단현상이나 통증이 개선됐다고 감사를 표할 때 봉사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올해로 벌써 15년째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조씨는 다소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한의사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조 학장의 부친은 이전 6가와 웨스턴에서 영업하던 천광한의원의 조영환 원장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침술은 유명해서 하루 100명이 넘는 환자가 몰린 적도 있다"면서 "자신이 그 침술을 이어받아 기쁘다"고 웃음지었다. 그가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에 한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침 하나만 있으면 언어장벽이나 문화차이에 상관없이 아픈 사람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점이 한의학의 장점입니다." 아버지의 개인교습과 다양한 임상실습 등이 큰 힘이 되고 있으며 중국어를 전공한 덕에 중국 심양에 위치한 요녕중의대에서 중국의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의학을 적용해야 할 사람만 다를 뿐 중의학 한의학 미국 한의학 모두 기본은 같습니다. 여기서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자신감을 갖고 미국 사람의 식습관과 환경을 심도있게 연구하면 미국 한의학도 꽃 피울 날이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러나 환자를 사랑하고 낫게 해주고픈 마음과 환자가 치료돼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할 수 있는 한의사로서의 기본정신이 없다면 차리리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녀는 조언한다. 조 학장은 "자신이 가르친 졸업생들이 미주류 의료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의과 대학 학장으로서의 꿈이고 한의사로서는 "가난으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타인종에게 무료 진료기회를 넓혀주는 것"이 더 큰 꿈이라고 말했다. 진성철 기자

2008-08-14

[나의 일 나의 꿈] 'MTV같은 브랜드 키워야죠'

"온라인 등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가수들의 마케팅을 지원하는 것이 주요 업무죠." LA다운타운에 위치한 FR*A사는 '뉴미디어 마케팅 에이전시'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한인업체다. 지난해 9월 음악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futurerockstarsofamerica.com)를 오픈하며 출범한 FR*A는 웹사이트 운영과 함께 가수들의 뉴미디어 홍보 에이전시 업무도 하고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다니엘 S 박 다니엘 조 다니엘 H 박 존 김 등 4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것이 FR*A다. 다니엘 S 박 다니엘 조씨는 마케팅 에이전시 업무를 주로 하고 다니엘 H 박 존 김씨는 FR*A 웹사이트와 자체 브랜드 제품 생산을 맡았다. 뉴미디어 마케팅이란 인터넷 셀폰 스마트폰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해 가수들을 홍보하고 이들의 앨범을 마케팅하는 것. 인터넷 등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며 음반사들의 기존 홍보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다. 새로 나온 뮤직비디오나 앨범은 유투브나 마이스페이스 등을 통해 기존 방식보다 빠르게 퍼지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가수들이 팬들과 직접 의사소통도 쉬워졌다. FR*A는 이같은 첨단 기술에 대한 가수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수들의 웹사이트를 제작 새 앨범이나 이벤트 등을 업데이트하는 등 마케팅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 조씨는 대형 음반사 게펜 레코드사에서 뉴 미디어 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일 했었고 다니엘 S 박씨는 밴드 활동 경험이 있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서비스가 가능하다. 조씨는 "게펜레코드(Geffen Record)에서 배웠던 뉴미디어 마케팅 시스템에 박씨가 밴드 활동의 경험을 접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현재 메이시 그레이(Macy Grey) 벤틀리(Bentley) 등 10여명의 가수가 이들의 고객이다. FR*A는 웹사이트 활성화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FR*A의 웹사이트는 일종의 온라인 커뮤니티다.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에 대한 정보를 올리고 각 지역의 가수들을 소개한다. 또한 지역별로 열리는 각종 이벤트나 공연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박씨는 "각 지역에 있는 뮤지션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이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곳"이라며 "각 지역의 음악을 온라인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런칭 1년이 지났는데 한달 방문객이 1만5000명에 달한다. 방문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또한 웹사이트 자체를 브랜드화해 의류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브랜드 제품 생산은 다른 파트너인 다니엘 H 박씨와 존 김씨가 맡았다. 앞으로 온라인상의 음악 매니아들의 공간으로 FR*A 웹사이트를 더욱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FR*A의 슬로건이 '지역 음악을 세계로 알린다'"라며 "앞으로 음악전문채널 MTV같은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2008-08-07

[나의 일 나의 꿈] '한인들 자격취득 도와야죠'

부동산 전문인 자격증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상업용 부동산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에이전트에게는 CCIM(Certified Commercial Investment Member)이라는 자격증이 권위를 갖는다. 취득이 쉽지 않아 자격증을 가진 한인이 많지 않은데다 이러한 자격증이 있는지 조차 모른 채 상업용 부동산을 취급하는 에이전트도 많을 정도다. 이러한 CCIM 자격증 소지자들의 협회인 CCIM LA지부에 최초로 한인이 회장으로 내정됐다. 현재 CCIM LA지부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제이미슨 서비스의 피터 백(39) 부사장이 최근 이사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추대 오는 11월부터 1년간을 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백 부사장은 "현재 CCIM LA지부에는 18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중이고 협회에 꾸준히 참석하는 한인은 10명도 채 안된다"며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회장을 맡게 된다"고 말했다. CCIM LA지부는 LA카운티 뿐 아니라 샌타바버라 하와이까지 포괄해 CCIM 지부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중 하나로 꼽힌다. 협회에서는 CCIM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부동산 전문인들에게 매년 필요한 클래스를 제공하고 상업용 부동산 관련 주요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백 부사장은 "전국 커머셜 에이전트 15만명중 CCIM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6%밖에 안돼 이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주류 부동산 업계에서도 능력을 인정한다"며 "따라서 한인 부동산 전문인들이 주류사회에 진출하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 부사장은 회장으로 취임하면 한인 부동산 업계에 이를 적극 홍보하고 보다 많은 한인들이 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할 생각이다. 그는 "한인부동산전문인협회와 연계해 세미나도 개최하고 주류사회 정보도 전달하는 등 한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1년 부동산업계에 뛰어든 백 부사장은 남가주 최대의 부동산 회사중 하나인 제이미슨 프로퍼티스가 건물을 구입하면 리스를 담당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으며 2004년에 CCIM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는 "CCIM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받는 수업 내용중 리스에 관한 것도 있는데 이 수업이 현재 업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가 최고의 부동산 회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CCIM 자격증을 딸려면 CCIM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CCIM협회가 제공하는 4개의 클래스를 이수해야 한다. 4개의 클래스는 파이낸셜 분석, 마켓 분석, 소비자 결정 분석, 인베스트먼트 분석 등으로 이뤄진다. 클래스 수업료는 총 5000달러 정도다. 이후 협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을 거래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 심사를 받아 자격증을 받게 된다. 김현우 기자 khwo@koreadaily.com

2008-07-31

[나의 일 나의 꿈] '크루즈 분양사업 하고 싶어'

LA한인타운에 있는 크루즈 전문 여행사 나라관광에 들어서면 큰 목소리로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미국인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마이클 베일리(Michael Bailly) 크루즈 팀장.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베일리 팀장의 아버지는 주한미군으로 근무 중 한국인 어머니와 만나 한국에서 퇴역했다. 베일리 팀장은 "아버지가 퇴역 후 전자회사 소매를 거쳐 관광회사에서 가이드로 근무했었다"며 "영어와 한국말을 구사하는 최초 외국인 가이드를 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피를 받아서인가. 87년부터 한국 스마일관광에서 티케팅 가이드 등의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 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돼 벌이도 괜찮았고 여행사 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서울올림픽을 꼭 보고 싶어했던 아버지가 올림픽 몇 달 전에 돌아가셨다. 잘 되던 일도 접고 91년 가족과 함께 아버지 친척이 계시는 LA로 건너왔다. "LA에서 여러가지 일거리를 찾아봤지만 배운게 도적질이라고 여행사에 취직했다"는 베일리 팀장은 "항공권 호텔 등 투어오퍼레이터를 전담하며 모든 여행업무를 전문가 수준으로 배웠다"고 설명했다. 잘 나가던 베일리 팀장은 97년 한국 관광객을 대규모로 받는 여행사에 스카우트되는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IMF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여행객이 급격히 감소했다. 결국 98년초반 여행사가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생계를 위해 햄버거가게 파트타임 자동차 세일 위성TV 설치 등 여러가지 일을 하며 한편으론 다른 여행사의 오퍼레이터 가이드 일을 도와주다 2004년 티케팅 전문 그린항공을 오픈했다. 나라관광의 변동영 사장과 인연이 닿은 것도 이때쯤으로 크루즈 여행의 미래를 열변하는 변 사장의 비전에 이끌려 나라관광으로 자리를 옮겼다. 크루즈는 '종합선물세트'라는 베일리 팀장은 "크루즈에는 수영장 골프 카지노 극장 등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있어 배 안에서 편안하고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며 "또한 기항지에서 자동차 비행기 요트 등을 렌트하거나 시내관광 골프관광도 즐길 수 있는 여행상품은 크루즈뿐"이라고 강조했다. 베일리 팀장의 꿈은 10년쯤 후엔 7만톤급 크루즈를 한 대 구입하는 것. 크루즈를 2000명 정도 탈 수 있는 안락한 시설로 개조한 뒤 분양할 계획이다. 최근 크루즈 여행이 뜨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베일리 팀장은 "아내와 함께 11만톤급 사파이어 프린세스호를 타고 알래스카를 다녀오면 아내한테 좀 보답이 되지않겠느냐"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백정환 기자 baek@koreadaily.com

2008-07-24

[나의 일 나의 꿈] '야식집으로 더 유명하죠'

스테이시 김 사장은 "웨스트우드 빌리지에는 유명한 술집(Pub)이 많은데 대부분 오후 11시30분이면 문을 닫아 해장이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가게를 찾는 것 같다"고 밝혔다. 가게의 피크타임은 점심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와 사람들이 야식을 찾기 시작하는 오후 11시에서 그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특히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찾는 고객의 숫자는 비슷하지만 점심에는 가격이 싼 런치스페셜이 주를 이루고 저녁과 야식시간에는 런치보다 4불정도 비싼 샌드위치가 팔리며 점심과 야식의 매출 차이가 크게 난다는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롤 인 샌드위치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필리 치즈 스테이크 샌드위치와 김 사장이 새로 추가한 불고기 샌드위치. 이들 메뉴는 일주일에 600개와 200개 정도에 팔린다. 김 사장은 이처럼 샌드위치 판매가 호조를 보이는 것은 바로 "청결과 음식 맛을 높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식당의 위생상태를 개선하고 샌드위치의 생명인 바게뜨 빵의 구매를 위해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5곳의 베이커리를 일일이 찾아가 시식한 후 최고만을 선택하는 발품을 팔고있기 때문이다. 또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장을 보고 가장 인기가 있는 불고기 만큼은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만든다. 또한 불고기는 지방을 제거하고 자신만의 특제소스를 첨가해 타인종 입맛을 사로 잡았다고. 롤 인 샌드위치의 또 다른 특징은 영업시간이 요일별로 다르다는 점이다. 고객이 가장 많은 목 금 토요일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그 다음날 새벽 3시까지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며 손님이 가장 적은 편인 일요일과 월요일은 오전 10시나 10시30분에 가게 문을 열고 오후 10시나 11시에 문을 닫는다. 영업시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주일에 77시간이나 일하는 하드워커다. "2년 전 가게를 인수하기 전에는 그냥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가게를 하면서 너무 힘들어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수백번 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손수 만든 샌드위치를 사랑해 주는 손님들이 있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김 사장은 "직장인들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롤 인 샌드위치 가게를 열면 성공을 확신한다"면서 "롤 인 샌드위치의 프랜차이즈가 꿈"이라고 말했다. 진성철 기자 sjin@koreadaily.com

200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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